종교는 원래 인간을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사랑, 자비, 생명 존중. 교회는 늘 그런 가치를 설교해 왔다. 그런데 현실 속 일부 극단적 개신교 공동체는 정작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상식조차 외면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왜 종교가 광신으로 변질될 때 위험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3년, 허버트 쉐이블 목사 부부는 폐렴으로 고통받던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아이는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렸지만, 부모는 약 대신 기도를 선택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살 가능성이 있었던 아이는 결국 숨졌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부부가 이미 몇 년 전 같은 이유로 또 다른 아이를 잃었다는 점이다. 같은 비극이 반복됐는데도 교회와 부모는 교리를 버리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문제의 핵심은 “오직 믿음만으로 치유된다”는 극단적 교리였다. 이들이 속한 교회는 의학적 치료를 믿음 부족처럼 취급했고, 병원보다 기도를 우선시하도록 가르쳤다. 현대 의학은 무시되었고, 과학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아이의 생명보다 교리 체면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사건 이후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였다. 교회 측은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부모의 믿음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식의 발언까지 내놓으며 비난을 받았다. 아이가 죽었는데도 반성보다 교리를 지키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신앙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교리를 위해 희생되는 구조가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이는 일부 개신교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반지성주의와 맹목적 문자주의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성경 구절 몇 개를 절대화한 채 현대 의학과 사회 시스템 전체를 불신하는 태도는 결국 현실 감각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피해는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아이를 살릴 수 있었던 방법은 이미 존재했다. 병원도 있었고 의사도 있었으며 치료법도 있었다. 그러나 부모와 교회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아이가 죽자, 책임은 “믿음 부족”이라는 말 뒤에 숨겨졌다. 이것은 신앙의 모습이라기보다 광신의 모습에 가깝다. 생명을 외면하면서까지 유지되는 교리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게 된다.
진정한 신앙이라면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일부 극단적 종교 집단은 신앙을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로 바꾸고 있다. 의학을 거부하고, 상식을 적대시하며, 비극조차 교리로 덮으려는 태도는 결국 종교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외쳤지만, 정작 가장 먼저 외면된 것은 눈앞에서 고통받던 아이의 생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