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원래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고,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때때로 종교가 권력을 견제하기는커녕 그 권력의 가장 충실한 응원단이 되었던 장면들을 기록하고 있다. 1980년대 과테말라가 바로 그런 사례였다.
1982년 쿠데타로 집권한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는 자신을 “거듭난 크리스천” 지도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성경을 인용하며 연설했고, 국가 운영을 신앙과 연결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독실한 신앙인이 나라를 이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정권이 보여준 현실이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수많은 마야 원주민들이 학살당했고, 마을은 불탔으며, 민간인들은 강제 이주와 폭력에 시달렸다. 국제사회는 이를 집단학살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일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현실보다 "반공주의"라는 정치적 목표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독재자를 비판하기보다 찬양했다.
인권침해 의혹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그를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라고 추켜세웠고, 신앙의 언어를 이용해 정권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절규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되었던 것이다.
이 순간 종교는 더 이상 양심이 아니었다.
권력의 확성기가 되었다.
원래 종교가 해야 할 역할은 "왕이 잘못하면 왕에게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테말라에서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독재자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축복의 손을 들어 올렸다. 성경은 권력을 심판하는 도구가 아니라 권력을 포장하는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결탁이 단순한 정치적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독재자는 종교의 권위를 이용해 자신을 신성한 존재처럼 포장하고, 종교 지도자는 권력과 영향력을 얻기 위해 독재자와 손을 잡는다. 그렇게 형성된 정경유착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만, 결국 가장 큰 피해는 평범한 시민들이 떠안게 된다.
과테말라의 농민들과 원주민들은 바로 그 대가를 치렀다.
종교가 권력의 편에 서는 순간, 신앙은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잃는다. 독재가 성경 구절로 포장되고, 폭력이 신의 뜻으로 미화되며, 비판은 신앙에 대한 공격으로 왜곡된다. 그렇게 되면 종교는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 아니라 권력을 숨기는 장막이 된다.
과테말라 사건은 특정 국가의 과거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경고다.
어떤 종교든 권력과 지나치게 가까워질 때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종교가 정치 권력의 편에 서는 순간, 신앙은 순수성을 잃고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침묵당한 피해자들과 왜곡된 진실이 남는다.
역사는 과테말라의 비극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종교는 과연 권력의 시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권력을 감시하는 양심으로 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