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용서하기 어려운 범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열한 범죄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신뢰를 이용하는 범죄다.
더욱이 그 범죄가 종교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적 권위를 이용해 저질러졌다면 그 죄질은 더욱 무겁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이민자 교회에서 드러난 목회자 성범죄 사건은 바로 그런 사례였다.
가해자는 거리의 범죄자가 아니었다.
교인들이 존경하던 목사였고, 고민을 들어주던 상담자였으며, 하나님을 전한다는 영적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한 일은 신앙을 이용한 돌봄이 아니라 취약한 여성들을 노린 권력형 성범죄였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피해자들의 처지 때문이다.
피해 여성들 상당수는 언어 장벽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민자들이었다. 일부는 체류 신분 문제로 인해 경찰이나 정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해자는 바로 그 약점을 파고들었다.
상담을 해주겠다며 접근했고, 치유 기도를 해주겠다며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그 신뢰를 범죄의 도구로 사용했다.
힘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노린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성범죄가 아니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권력형 착취라고 볼 수 있다.
성범죄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범행 방식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을 종교적 언어로 포장했다.
하나님을 언급했고, 기도를 언급했으며, 영적 치유를 이야기했다.
범죄자가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순간 피해자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당하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상대가 목사라는 이유로 의심하지 못하게 된다.
종교적 권위는 원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이 범죄를 감추는 가면으로 사용되었다면,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신앙 자체에 대한 배신이다.
신뢰를 이용한 사기는 비열하다.
그러나 신앙을 이용한 사기는 그보다 더 비열하다.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왜 피해자들은 바로 신고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피해자들이 신고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을까?"
종교 공동체 안에서 목사는 단순한 직장 상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신도들은 목회자의 행동을 쉽게 의심하지 못한다.
특히 이민 사회에서는 목사가 상담자이자 조언자이며 생활 지원자 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공동체 전체와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바로 이런 권력의 비대칭성이 성범죄를 장기간 은폐시키는 토양이 된다.
종교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라고 해서 법 위에 설 수는 없다.
목사라는 직함은 범죄를 덮는 방패가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받는 자리다.
사람들은 목회자에게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신뢰를 악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 믿음마저 배신한다면 그 피해는 개인의 상처를 넘어 공동체 전체의 상처로 이어진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 개인뿐 아니라 종교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 한 명의 범죄자가 수많은 사람의 신앙과 삶을 무너뜨린 결과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목사의 범죄로 끝나서는 안 된다.
왜 그런 범죄가 오랜 시간 반복될 수 있었는지, 왜 피해자들이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는지, 왜 종교 공동체 내부의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는 지도자를 무조건 믿는 공동체가 아니다.
오히려 지도자조차 감시와 검증의 대상이 되는 공동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든 견제받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그 권력이 정치 권력이든, 경제 권력이든, 종교 권력이든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신앙은 권력을 이용해 약자를 침묵시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데서 시작된다.